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리천 전투 (문단 편집) === [[태조 왕건]] === [youtube(8EIAJJQ4Jxk)] 드라마 [[태조 왕건]]에서도 이 전투가 199~200화인 극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데, 여기서도 양측의 전력은 거의 비등한 편이었다. 나레이션이 199회에서 언급하듯 견훤이 '우리 군도 숫자가 적지 않은데 왜 자꾸 밀리냐.'고 푸념한 점과 후백제 영토가 물자가 풍부한 편인 경상남도, 전라도 쪽에 속해있다보니 후백제군도 결코 병력이 적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.. 신검을 위시한 수뇌부의 의기도 드높았고 병력 차이도 얼마 없으니 해볼만한 싸움이었으나[* 고려와의 일전을 대비해 군사들을 철저히 훈련하여 강군이 됐다며 자화자찬하고 있었다.] 정작 전투는 시작 후 너무나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. '''하필이면 [[고려군]] 선봉이 [[견훤(태조 왕건)|견훤]]이었기 때문.''' 원래 왕건은 노령인데다 등창까지 난 견훤을 전장터에 데려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세운 [[후백제]]를 거두고 [[신검(태조 왕건)|패륜 아들]]을 처벌하려는 견훤이 전장에 자신을 데리고 가달라고 계속 간청[* 무릎을 꿇겠다고도 하고, 그래도 왕건이 주저하자 아예 빌겠다고까지 하면서 겨우 얻어낸 출전권이었다.]하여 견훤 역시 일리천 전투에 참전한다. 선봉을 정할 때 견훤은 자신을 선봉으로 세워달라고 요청하는데 당연히 직접 싸우겠다는건 아니고, [[후백제]]인들의 견훤에 대한 이미지를 이용해 단체 [[모랄빵]]을 유도하겠다는 견훤의 계책이었다. 이 때 배현경이 '''"아니 대체 그 몸으로 어찌하시겠다는 것이옵니까??"'''라고 묻기도 했다. 이전에 견훤이 호령하자 [[상귀]]의 병사들이 명령을 듣지 않은 것을 본 유금필과 윤신달은 견훤의 요청을 지지했고 왕건도 그 요청을 받아들인다. 고령에 선봉에 선 견훤을 배려해 왕건은 견훤의 부장들로 유금필, 홍유, 배현경, 박술희 등 고려의 간판급 장수들을 붙여 견훤을 보좌하게 했다. 견훤의 예상대로 [[후백제]] 병사들은 견훤을 보자마자 동요하기 시작하였고, 견훤은 공세를 펼치지 않고 후백제군의 내부 분열을 유도하는데 이때 견훤은 [[격안관화|부적절한 때에 공격하면 오히려 후백제군이 결집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]]. 대놓고 깃발에 '''대고려국 황제 상보 견훤'''이라고 적혀있기 까지 했으니 백제군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이끌었던 영웅과 마주하게 된 셈. 분명 낮에 공격 명령을 내렸건만, 밤이 될 때까지 후백제 병사들은 진격도 후퇴도 하지않고 우물쭈물하며, 오죽하면 최초 공격 명령을 내렸을 때도 애술 혼자서만 달려나갈 뿐 아무도 달려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. 결국 애술은 부장 몇명을 처단하고 억지로 군대를 전진시키는데, 후백제군의 사기가 완전히 떨어졌음을 파악한 견훤은 [[정신 제어(스타크래프트 시리즈)|'''"나의 군사들이여! 백성들이여! 어서 오라! 두려워 말고 오라! 어서 오라! 무기를 버리는 자는 모두 살려줄 것이다. 버려라! 다 버려! 버려!"''']]라고 외쳤고, 동시에 [[고려]]군은 공세에 나서기 시작한다. 벌써부터 견훤의 외침에 동요되어 [[후백제]]군의 탈영병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고,[* 왕건도 견훤의 이런 전술에 놀라는 묘사가 있다.] 지리멸렬한 싸움 끝에 상애는 [[배현경(태조 왕건)|배현경]], 상귀는 [[유금필(태조 왕건)|유금필]]에게 참살당하며, [[애술(태조 왕건)|애술]]과 [[김총(태조 왕건)|김총]]이 각각 [[박술희(태조 왕건)|박술희]]와 [[홍유(태조 왕건)|홍유]]한테 포로로 잡히고 만다.[* 참고로 포로로 잡힌 둘은 신검의 난이 일어날 때 신검에게 가담하지 않았다. 오히려 이 둘은 신검이 정변을 일으킬 때 구금돼 있었다. 때문에 이 둘은 잡혀서 왕건과 견훤앞에 대령할 때 견훤이 먼저 왕건에게 이 둘은 용서해 달라고 요청한다. 왕건은 '''"이래서 인심이 무서운 것이오!"''' 라는 명대사를 남겼다.] 그 사이 고려군은 백제 군사들한테 무기를 버리라고 하고, 백제군은 자기네 군사들한테 싸우라고 재촉한다. 오죽하면 양검이 아버지가 아니라 원수라 절규할 정도. 견훤의 동생 능애도 백제를 고려에 갖다 바친다며 한탄했다. [[https://m.youtube.com/watch?v=8EIAJJQ4Jxk&pp=ygUQ7J2866as7LKcIOyghO2IrA%3D%3D|#]] [youtube(4Vv-k76ClPw)] 신검은 남은 병력을 이끌고 황산에 재집결하고자 했으나,[* 황산벌이라는 말이 나오자 [[후백제]] 군막에서는 신검의 언급대로 '하필 계백이 전사한 그곳이냐.'며 자신들이 곧 완전히 패망하게 될 것을 직감한다.] 후퇴하던 중 또다시 다수의 탈영병이 발생하여(양검이 2만 가량이 이탈했다고 언급한다.) 황산에 도착할 때 쯤엔 10만의 대군 중에서 겨우 3만도 남지 않게 되었다. 게다가 항복한 애술과 김총이 왕건에게 후백제군의 이동 계획을 토설하여 고려군은 미리 기병 5만을 보내 총 10만의 대군이[* 기병 5만 + 보군 5만을 더한 총 대군.] 황산을 포위했고, 결국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신검은 능환의 제안에 따라 결국 [[고려]]에 항복한다. 능애, 능환, 파달 등 쿠테타 주역들은 그렇게 모조리 처형 당했다.[* 대본상에는 신덕도 처형당하는데 신덕을 연기한 배우 [[임병기]](당시 임진일)이 낙마 사고 때문에 항복 후 처형 때까지를 촬영하지 못해 파달이 신덕 몫의 대사까지 하였다. 본래 파달의 대사는 자기를 처형하러 끌고가는 병사들을 뿌리친 후 '놔라 이놈들아! 내 발로 가겠다.'까지의 우직한 대사였지만 '죽는 건 억울하지 않소이다. 그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니 억울할 따름이오.'라는 신덕의 대사도 같이 해 퇴장하고 신덕은 조용히 사라진 걸로 처리 되었다. 다만 파달은 견훤을 금산사에 감시하는 나쁜 일을 해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.] 신검 삼형제의 경우 양검과 용검은 귀양보냈다가 신검은 벼슬을 줬다가 나중에 죽였다는 식으로 묘사했다. 단, 기본적으로 반란의 주역이고 왕자에 불과했던 양검, 용검과 달리 신검은 어쨌건 [[후백제]]의 군주였고 동정여론도 상당했기 때문에 대놓고 죽이고 기록을 남기면 구 백제 주민들을 자극할 게 뻔히 보인다. 그래서 극중 [[최지몽]]도 항복한 군주를 당장 죽인 일은 없다며 일단은 살려주자고 의견을 내비쳤다. 이후 [[후백제]] 민심이 완전히 고려와 동화되면 그 후 살려둘 필요가 없는 신검을 죽였다는 극중 후반부 묘사와 이어지게 된다. 짧게 스쳐지나가는 신검이 들판에서 홀로 참형을 당해 죽는 장면도 나오는데, [[https://youtu.be/sz9le-ko5sc|다큐멘터리]]에 따르면 이게 [[태조 왕건]] 마지막 촬영 장면이라 촬영 종료 후 출연진과 제작진이 쫑파티를 하는 모습까지 나온다. 그야말로 [[후삼국시대]]의 막을 내리는 전투답게 [[태조 왕건]]의 마지막 촬영까지 책임졌다고 할 수 있다. 참고로 작중 내 나레이션으로는 백제 군사들의 규모가 고려군에 딱히 뒤지지 않았을 걸로 보인다 라고 나오며 그리하여 이번엔 백제도 고창/운주 전투 때와는 달리 대등하게 맞서 싸울수 있었음에도 그냥 견훤 딱 한명이 고려군에 있었다는 이유 딱 하나만으로 너무나 억울하고 어이없이 마지막 최후의 패배를 한데 반해 고려군은 견훤 하나 덕분에 그냥 가만히 놀고있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자동적으로 거져 승리한것 처럼 나오지만, 백제는 후반부 고창/운주 전투 등으로 완전히 재대로 멸망테크를 타기 시작하여 안 그래도 점점 끝없이 내리막길을 걷고있던 마당에 견훤의 후계자 문제로 인해 내부 분열 국란으로 인해 더 이상 재기가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는데다 고려군보다 장수들이 숫자 또한 확연히 딸리고 최승우,종훈 같이 브레인 역할을 할 책사까지 차례로 없어졌는데 아직도 고려와 여전히 완전 대등하게 맞설 전력이었다는 것에는 상당히 의문이 든다. 또 한편 고려는 연이은 승리로 기세가 하늘을 찌를듯 한데다 발해의 왕자인 대광현이 데리고 귀부한 수만명의 발해인, 전 백제왕에 이어 신라까지 항복하여 신라군들까지 전부 흡수 하였겠다, 거기에 덤으로 북방의 말갈,돌궐의 지원군까지 있었으니 명장들의 숫자로나 장수들의 힘 스펙으로나 그냥 완전히 백제를 갖고 놀수있는 전력을 지니게 되었는데 두말할 필요없이 멸망직전에 이른 백제군보다 훨씬 더 우세한 것은 물론 승산이 몇배는 더 압도적으로 높지 않았을리가 없다. 때문에 투항해온 적국의 왕 견훤을 굳이 앞세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고려군의 승리는 이미 따놓은 당상이었을 것이라는게 거의 분명하며 백제군 또한 견훤 때문에 모든 병사들이 전의를 상실하지 않았다 해도 사실상 과거 [[황산벌 전투]] 만큼이나 대패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. [각주] [[분류:후삼국시대/전투]][[분류:태조(고려)]][[분류:견훤]][[분류:구미시의 사건사고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